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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의 끝_최금진
창밖에 모기들이 날고 있었다. 가느다란 목줄기에 여린 몸통, 투명한 날개였다
루주라도 발라준다면 예쁜 입으로 죽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절망하다가 가면 안될까요, 모기들은 내 방에 들어오려고 애썼다
피는 달다, 칼에 베인 손가락을 물고 오래 빨아본 적이 있다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죽은 새의 주둥이가 칸나꽃 같았다
아이들이 죽은 새를 돌로 찧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방충망을 두고 모기들과 마주 보았다, 허공을 날아본 지 얼마 안되는 것들이었다
날렵한 제트기처럼 방충망에 착지한 죽음
수직으로 매달려 내게 물었다, 당신도 우리처럼 목이 마르죠?
작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 장마에 벽지엔 물이 스미고
눅눅한 방바닥엔 쌓아놓은 옷들이 퉁퉁 불어 있었다, 올여름에 내가 한 일이라곤
종일 창밖을 내다보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기다리는게 다였다
끝없이 뒤로 연기되는 시간의 채무를 안고 괴로워하는 빚쟁이였다
모기들이 방충망에 털이 수북한 주둥이를 밀어넣고 내게 중얼거렸다
당신을 면회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나는 귀를 막았다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TV를 볼 것이다, 그 모든 걸
기다릴 준비가 되었다는 듯, 모기들의 눈이 충혈된 채 울먹이는 것 같았다
피를 잔뜩 머근은 얼굴로 꽃들이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목각 인형을 깎다가 손가락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 같은 낮달이 뜨고 지고
한밤중에 일어나 물을 마시다가 귀신처럼 서 있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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