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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이터/좋은 글귀107

나무를 위하여_신경림 나무를 위하여_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추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 2019. 4. 10.
백목련 진다_김선우 백목련 진다_김선우 이상하다, 계곡을 몰아쳐오는 눈보라 저 눈꽃떼를 어디서 만났던가 꽃으로 오기 전 네가 눈보라였다면 나는 무엇이었나 청명한 봄 한나절 돌연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내장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 꽃, 잎새도 없이 만개한 적멸보궁 얼음 녹아 아지랑이 흐르는데 왜 너는 그토록 서늘한 미소로 흔들리는지 네가 웃는 자리마다 조금씩 금이 가며 계곡의 뿌리가 시큰하다 독은 독으로 멸한다는데 동토를 녹인 건 열망의 독이었나 거꾸로 흐르는 눈보라의 꿈 사월 아침마다 목련꽃 져버릴까 두려웠더니 제 살 으깨며 번지는 석양 아래 눈보라여, 너는 자결을 준비했구나 뒤란에 나부끼던 무명 타래같이 새벽부터 곱게 몸단장 끝냈구나 꽃으로 오기 전 너는 무엇이었나 거꾸로 선 폭포였나 진흙창 뒹굴던 놋반지였나 내 독은 아직 .. 2019. 4. 10.
봄꽃나무 한 그루_심재휘 봄꽃나무 한 그루_심재휘 봄꽃나무는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 하나로 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꽃이 한 나무에 내리기 위해 준비한 그 오랜 시간도 바람 부는 아침의 어느 가지 위에 놓이고 나면 결국 꽃 한 송이의 무게로 흔들릴 뿐 꽃핀 가지는 또 새 가지를 내어 조금씩 가늘어지는 운명의 날들을 선택한다 그래서 해마다 봄에 관한 나의 고백은 꽃을 입에 문 작은 새처럼 꽃가지에서 빈 가지로 옮겨 앉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인데 삶이 시시해진 어느 봄날 만개한 봄꽃나무 밑을 지나다가 나는 꽃들을 거느린 가지들의 그늘에 잠시 누워 활짝 핀 꽃나무의 풍경 하나를 보고 싶어진 것이다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피는 꽃들이 가지마다 저대로 살아가는 한 나무를 봄꽃나무에 대한 그대의 기억이 단지 그대가 손 내밀어 잡았던 바로.. 2019. 4. 8.
입동_박형진 입동_박형진 가고 오는 것이 사람뿐만은 아닌가울 안 감나무 가지에는 붉은 감만 남고새벽 뜰 앞에 나서면 어느새 기러기 하늘 높이 난다추워지리란 예보를 들으니 더욱 쓸쓸해진다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구름 아래어느 핸 해마다 그러지 않으랴마는걱정 따윈 다 저 바다에 묻어나 둘까거둘 것도 없는 밭에 와 빈 지게를 벗고하늘로 담배연기를 뽑아올린다고구마순 한짐 콩깍지 한짐 져다 놓고소막 비닐을 댄다여름 내내 쳤던 모기장을 걷고남루한 생활 아픈 마음에나처럼여기저기 비닐조각을 덮대고 나니무쪽도 바로 못 베어먹는다는뼘만한 가을해 한나절이 또 가고 기다렸다는 듯 저녁 들어 비바람이 몰아친다소와 함께 소막에 있노라니 날은 어두워져올 겨울 아무 마련 없는 사람의 가슴도 어언간 따땃해진다. 201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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