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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이터/좋은 글귀

백목련 진다_김선우

by 사월愛.꿀하루 2019.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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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진다_김선우

 

이상하다, 계곡을 몰아쳐오는 눈보라

저 눈꽃떼를 어디서 만났던가

꽃으로 오기 전

네가 눈보라였다면 나는 무엇이었나

청명한 봄 한나절

돌연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내장을 따라 들어선 계곡에

꽃, 잎새도 없이 만개한 적멸보궁

 

얼음 녹아 아지랑이 흐르는데

왜 너는 그토록 서늘한 미소로 흔들리는지

네가 웃는 자리마다 조금씩 금이 가며

계곡의 뿌리가 시큰하다

 

독은 독으로 멸한다는데

동토를 녹인 건 열망의 독이었나

거꾸로 흐르는 눈보라의 꿈

 

사월 아침마다

목련꽃 져버릴까 두려웠더니

제 살 으깨며 번지는 석양 아래

눈보라여, 너는 자결을 준비했구나

뒤란에 나부끼던 무명 타래같이 

새벽부터 곱게 몸단장 끝냈구나

 

꽃으로 오기 전 너는 무엇이었나

거꾸로 선 폭포였나 진흙창 뒹굴던 놋반지였나

내 독은 아직 사타구니 뜨거운 희망이라서

절망을 멸하러 오는 절망의

맨얼굴을 볼 수 없다 네 발목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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