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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놀이터/좋은 글귀

가을 노래_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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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래_김진경


파란 하늘가에서 

은행나무가 방전(放電)하고 있다.


방전하면서

가지 끝이 노랗게 물든다. 

금빛 물감을 담뿍 찍은 붓끝처럼

길거리를 산과 들을 금빛으로 칠하고

어느날인가 우리 생의 한가운데로

황금빛 나뭇잎 하나 떨굴 것이다.


인색한 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전그릇에 던져넣은 금화처럼

나뭇잎은 우리 생의 깊이로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울리고

모든 것은 정지하고

우리는 놀란 눈으로 돌아보아야 하리라.


우리생의 무수한 단편들이

빠르게 스치며 지나가고 

저 지하에 놓이는 무거운 관의 둔중한 소리처럼

금빛 나뭇잎이 마지막 소리를 내고 멈출 때

누가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딜 것인가.

뒤돌아 금빛으로 칠해진 거리를 바라보며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리는 고개 숙여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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